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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소설

기리노 나쓰오 '그로테스크'

by 지식광부키우기 2025. 7. 3.

 

 

비정상의 굴레는 반복되는가

 

★★★☆☆

 

‘그로테스크’라는 작품입니다.

 

무려 750쪽에 달하는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글이 큰 지루함 없이 쭉 읽히는 작품입니다.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이 정도까지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서적으로 뒤틀려 있습니다. 뛰어난 외모를 지닌 동생을 질투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힌 언니, 타고난 미모를 가졌지만 성적으로 타락해버린 동생, 노력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하려 했으나 결국 벽을 넘지 못하고 매춘에 빠진 대기업 출신 동창, 그리고 한때는 유망한 학생이었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 또 다른 동창까지.

 

이들은 겉보기에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어딘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낸 점이 이 작품을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선 인간 심리극으로 만들어줍니다.

 

실제로 일기장을 통해 네 명의 삶을 다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너무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기분이 들죠.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각 인물의 감정과 행동, 성장 배경까지 세세하게 드러나면서 그들이 그렇게 살도록 변했는지 알게 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거나 따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화자의 시점이 바뀌고 이번에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역시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아닙니다. 중국에서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낯선 땅에서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갑니다. 불안정한 신분, 차별, 생계의 위협 속에서 정상적인 삶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유리코를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가즈에는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죠.

 

다시 이야기는 주인공인 가즈에로 넘어갑니다. 그녀가 어떻게 대기업의 일원이자 동시에 매춘부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주변부를 맴돌고 무너지던 자존감은 결국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확인받고 싶은 욕망으로 변질되고 그 끝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선택을 하게 되죠.

 

마지막에는 결국 메인 주인공인 언니마저 타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더 이상 유리코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외모도, 특별한 매력도 없었기에 그 선택조차 철저히 외면당하죠. 반면 유리코의 빼어난 외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시각장애를 가진 그녀의 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결국 비극은 또 한 번 반복되고 맙니다.

 

결국 등장인물 모두가 비정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끝맺음은 깊은 허탈감과 씁쓸함을 안깁니다. 누구 하나 구원받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고통의 서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병든 구조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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