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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소설

요네자와 호노부 '보틀넥'

by 지식광부키우기 2025. 6. 24.

 

 

너무도 잔인한 비교

 

★★★☆☆

 

‘보틀넥’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양평집에서는 도서관이 멀어 책을 들고 가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마지막 세 권째는 가볍고 작은 책을 골랐습니다.

 

작품은 참 잔인합니다. 누가 죽고 피가 튀고 그런 의미의 잔인함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철저히 괴롭히는 방식을 택합니다. 폭력이나 고통을 직접적으로 가하는 것이 아니라 평행 세계의 그 사람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요.

 

주인공의 세계는 불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모님의 삐걱거리는 관계, 형의 죽음, 그리고 연인 같은 친구의 죽음까지 그가 겪은 상실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조차 없는 세계에서 홀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친구가 죽은 장소를 찾은 주인공은 그곳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을 겪습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이동하게 되죠. 그 세계에는 자신 대신 누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관계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그곳에서 주인공은 전혀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세계에서 부모님의 사이는 놀라울 만큼 좋아져 있고 죽었던 형은 멀쩡히 살아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자신의 세계에서는 어두운 기운에 잠식되어 있던 연인이 그곳에서는 밝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누나의 후배로서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죠.

 

모든 것이 자신의 세계와는 달리 평온하고 온전하게 돌아가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자신은 늘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는데 누나는 그 고통을 뚫고 나아가 결국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앞에서 말이죠.

 

같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그것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과 회피하고 무뎌진 사람 사이에는 이렇게도 큰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더욱 잔인하게 다가오고 주인공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그 세계에 불필요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연인의 죽음에 얽힌 작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며 주인공은 그제야 그녀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다시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죠.

 

하지만 기적 같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중학생인 그는 변하지 않은 불행한 현실 속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친구는 죽었고 가족은 무너진 채이며 자신은 너무 많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도착합니다. 짧은 그 메시지는 현실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오죠. 마치 이제 선택하라고 말하는 듯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살아갈 용기를 낼 것인지.

 

작품은 그 선택을 끝내 보여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내딛을지 모르는 그 한 걸음을 독자에게 조용히 넘겨둔 채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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