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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소설

아키요시 리카코 '유리의 살의'

by 지식광부키우기 2025. 7. 1.

 

수동적인 기억상실자

 

★★☆☆☆

 

‘유리의 살의’라는 작품입니다.

 

20분 이상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사고 이후 짧은 기억만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20년 전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고 출소한 남성을 죽이고 자수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살인과 자수라는 중대한 기억마저 금세 사라지고 자신이 왜 경찰서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문을 품은 형사는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죠. 어쩌면 그 형사가 이 사건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겁니다.

 

살해당한 남성은 알고 보니 주인공의 기억상실증과 부모님의 사망에 깊이 연관된 인물이었습니다. 무죄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증거나 진술이 없는 주인공은 결국 구치소에 수감되고 맙니다.

 

그곳에서 히사에라는 노부인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던 사실을 지적하며 주인공이 누명을 쓰게 된 건 남편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고 있었죠.

 

주인공은 점점 그녀의 이야기도 믿으면서 자신이 적은 메모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남편을 믿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히사에의 말에도 끌리며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자신이 믿어야 할 진실을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을 꾸민 건 히사에였습니다. 20년 전 무차별 살인의 피해자가 그녀가 사랑하던 사람이었고 그녀는 복수를 위해 주인공의 혼란을 이용한 것이었죠. 그녀가 의심하던 남편은 오히려 진실을 알고서도 끝까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과 남편의 짧은 대화 속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이 잠시 살아납니다. 하지만 곧 다시 20분짜리 세상으로 돌아가죠. 남편의 쓸쓸함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영화 메멘토가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 특성상 주인공이 메모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추리를 이어가야 몰입도가 높아지는데 작품 속에서는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중반부의 흐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유사한 상황에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형사의 설정 역시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치기보다는 감정에 흔들리는 모습이 자주 부각돼 형사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졌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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