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된 행동은 사회적 규범 때문인가 내면의 악 때문인가
★★★☆☆
‘고충증’이라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시가 붙은 책은 딱 한 권 있었는데 바로 살육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고어적인 묘사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도 읽는 내내 19금 판정을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수위가 높게 느껴졌는데 찾아보니 의외로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살육에 이르는 병이 고어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상당히 선정적인 묘사들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만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이런 고어함이나 선정성은 자극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종종 트릭을 감추거나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죠.
작가는 인간이 악령보다 더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겉보기엔 잘 살고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온전하게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언니인 마미의 이야기로 시작되며 2장과 3장은 동생인 나미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초반에는 마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녀와 관련된 인물들이 하나둘 이상 증상을 호소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점차 불길한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마미 역시 이 기이한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심리적으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마미의 이야기는 끝내 어떤 진실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끝나고 이후 2장에서 나미의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본격적인 진상 규명이 시작됩니다.
성을 매개로 얽히는 관계들, 감춰졌던 진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불행한 삶을 자초하고 결국 각기 다른 방식으로 파멸에 이르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죽음의 방식 또한 대부분이 왜곡된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파괴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절판된 작품이지만 한국어판 표지는 이야기의 내용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는 편입니다. 반면 일본판 표지는 얼핏 보기엔 전혀 이런 내용의 소설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인상을 줍니다.
두 가지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고 느꼈는데 전자는 이 어질어질한 이야기의 분위기와 정서를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묘사한 반면 후자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들의 운명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비극성을 오히려 더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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