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대 머리 쉽지 않네
★★☆☆☆
‘성녀의 독배’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의 후속편입니다. 후속편답게 이번 작품도 전작과 완전히 동일한 플롯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요. 주인공이 사건 현장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이를 반박하며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탐정이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건은 푸린이 방문한 한마을에서 발생하고 그 뒤를 몰래 따라간 야쓰호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초반 전개는 사실상 야쓰호시가 주도합니다.
초반에는 신부를 화자로 내세워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신부의 말을 통해 마을 분위기와 사람들의 태도, 묘한 긴장감이 서서히 쌓여가면서 ‘무언가 있음’을 암시하죠. 그러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부터는 분위기가 전환되며 사건의 가능성을 좁혀가는 역할은 본격적으로 용의자들이 주도하게 됩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이렇게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를 제시하며, 이야기는 점차 ‘가능성의 전쟁’으로 흘러갑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야쓰호시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끝내 진범을 밝혀내지 못합니다. 이 지점부터 작품의 방향성도 다소 달라지기 시작하는데요. 사건의 진범이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드러나는 동시에 처음에는 마을 내부에서 벌어진 일로 보였던 사건이 갑자기 푸린과 연관된 인물들 즉 외부 세계와 연결되며 더 큰 그림으로 확장됩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서사가 전개되면서 단순한 밀실형 추리극이 아니라 배후와 구조까지 함께 드러나는 전개로 분위기가 바뀌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의자들이 서로 가능성을 내세우며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주장하고 야쓰호시가 그 주장들을 하나씩 반박해나가는 초반 전개까지는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논리적인 대결 구도와 긴장감 있는 흐름이 잘 유지되었죠.
하지만 이후 푸린의 '보스'격 인물이 등장하고 진범을 가리기 위한 두뇌 게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이야기의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구성도 다소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앞부분의 깔끔한 가능성 배틀과는 달리 후반부는 인물과 전개가 뒤엉기며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결국 세계관 확장을 위한 장치들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제시되는 가능성들이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이 반박되면 또 다른 가능성이 나오고 그 위에 또 다른 인물의 개입이 이어지며 논리 구조가 점점 복잡해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지점으로 치밀함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도전적일 수 있지만 일정한 리듬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피로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세계관을 확장하기보다는 이전 작품처럼 하나의 사건에 집중해 짧고 밀도 있게 전개했더라면 더 깔끔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속작으로 이어가기 위한 설정이나 외부 인물의 개입이 늘어나면서 본래의 사건 자체가 흐려지고 이야기의 중심이 분산된 느낌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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