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비극은 책임과 희생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
‘체르노빌’라는 작품입니다.
쿠팡플레이에서 HBO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예전부터 궁금했던 드라마들을 하나둘 리스트업하게 되었는데요. 그중 가장 첫 작품으로 선택한 건 바로 체르노빌이었습니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어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습니다.
3화, 1화, 1화 이렇게 나눠서 시청했는데요. 참사를 다룬 드라마인 만큼 전반적인 분위기와 음악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방사능을 측정하는 계측기 소리와 유사하게 들리는 OST가 작품 내내 비극을 암시하듯 끊임없이 배경을 채우고 있었고, 웃음을 잃은 레가소프의 표정과 맞물리며 이 상황이 과연 타개될 수 있을지 모를 깊은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고 직후 다리 위에서 불꽃처럼 치솟는 빛을 해맑게 바라보던 시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연인과 손을 맞잡은 채,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구경하던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해서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이들의 참혹한 모습이 이어지고 마지막 화에서, "그들 중 누구도 생존하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화면에 떠오르는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방사능 확산을 막기 위해 유기 동물을 사살하는 장면이 꽤 길게 이어지는데요. 이 장면은 단순한 임무 수행을 넘어, 인간이 초래한 재앙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특히 그 임무에 투입된 병사 중 한 명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배리 키오건인데, 그는 특유의 공허한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이 암담한 분위기를 한층 더 짙게 만들어 줍니다.
이 외에도 광부들과 바이오 로봇 등,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투입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들은 자발적인 영웅이라기보다, 체제의 명령 아래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존재들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책임을 지는 사람과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크고도 불공평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재난극이 아니라, 무지와 은폐, 체제의 문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피폭될 줄 알면서도 수습 책임자로 나선 인물들의 공포는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 혼란, 그리고 책임감은 화면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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